아취 (雅趣) (1 of 2)
대한민국 수도와 한복판에는 명문 대학들이 많다. 그 주변엔 값비싼 사립대도 있다. 어느 지방엔 작은 국립대도 있다. 세태 속에 묻어 가는 네온사인, 형광불빛 요란한 뒤로 학교를 상징하는 수호신이나 영험한 동물이나 굳건히 솟은 높다란 탑이 몇몇 학생들의 말을 지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정문이 있고, 달아오른 기름 속으로 오징어 다리 한 도막, 감자 한 조각이 튀겨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큰 게 한 마리 담겨있는 국물에 퍼져가고 있는 오뎅이 있는 후문도 있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떨치며 체인점을 넓혀 가는 큰 바일 수도 있고 낡은 나무 탁자가 두개쯤 놓여 있는 닭똥집을 파는 초라한 술집도 있다. 대학가 주위에는 인터넷 카페가 생기는가 하면 편의방과 게임방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생기기도 했다. 시내 중심가에도 하나 있고 이 글에 쓸 학교 북문에 벌써 같은 이름이 두개씩이나 있는 잘 나가는 닭갈비집이 후문에 있다. 조금씩 익어가며 진한 황토빛을 만들던 토막들이 불이 약해지자 진한 연기 속으로 파묻힌다.
한동아리, 같은 서클의 세사람이 술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아저씨, 사리하나 주세요.” / “하나만?”
“예.”
이집 아저씨의 욕심은 밉지 않다. 대충 깎은 턱수염처럼. 신입생이라 아직은 애띈 얼굴을 가진 나이 어린 후배하나가 질문을 한다. 고개는 완전히 왼쪽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비스듬하게 오른쪽으로 숙인 것이 눈은 왼쪽을 보게 하고 있다.
“A.H.형은 요즘 뭐하시는 데요.”
“서점에서 일하잖아.”
“서점요? 잘 됐네. 책 좀 사야 되는데. 책 값 좀 깎아 줄래나.”
“동네에 자기 집 근처라던데, 전공책같은 건 안 팔걸.”
가장 나이 많은 선배가 하나 보인다. 이 선배는 얼굴이 검다. 그는 그의 거먼 얼굴을 자랑스러워한다. 무슨 감정이라도 얼굴에는 표시가 잘 나지 않는다.
“할머니 혼자 하는 서점인데 할머니 말벗도 되어주고 자기 읽고 싶은 책도 좀 읽고. 허리 아프다던데 무리 안하고 딱 적당한 일거리 찾은 모양이야.”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할 시점이 된 것 같았다.
“어제 나이트 갔다면서?”
큰형보다 한 학번이 늦은 선배가 어린 후배에게 오늘 오전에 들었던 얘기를 꺼내도록 한다.
“예.”
허영심과 부산함에 가득찬 고개를 끄떡였다.
“재밌었어요.”
어느새 화실에는 그녀와 둘이 있다.
“커피 한잔할래?”
저 표정, 저 눈빛. 자신에게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듯한 그 퇴폐미(頹廢美)에 속은 남학생이 한둘이 아니리라. 그녀는 탁자 맞은 편에서 표지는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도록 처음 샀을 때 서점의 점원이 주었음직한 누런 봉투로 책꺼플을 입혀 놓은 그림이 많이 들어 있는 책을 보고 있다. 오붓한 시간이라곤 건네 본 적 없는 사람이 한 제안이라는 듯 약간은 의아해하는 표정이다.
“아니.”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듯한 감지하기 힘든 미동이 포착되었다. 그녀의 눈을 보고 있어야 마땅하겠지만 입술을 보고 있지 않았더라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미세한 미소도 있었다.
“음료수 마실래. 콜라.”
커피한잔하자면 뭔가를 마시면서 함께 얘기나 나누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녀는 커피와 콜라를 구분했다. 그녀는 콜라를 좋아한다. 콜라 마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콜라는 세계 어디서나 젊음과 발랄함의 상징이 되어있다. 그런 건 그녀에게 잘 어울릴 지 모른다. 하지만 후는 아직까지 그녀에게서 그런 면을 발견한 적이 없다. 아직 어린 것만 같았다.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 그에 어울리지 않는 차분함도 있었다.
콜라 캔을 바닥에 세워 놓고는 발을 높이 들었다가 캔이 옆으로 찌그러들 틈을 주지 않으려고 강하게, 빠르게 눌러버린다. 후는 말랑말랑한 캔을 손에서 버릴 때면 언제나 이러한 행동으로 자신의 순발력을 시험해 보곤 했다. 어쩌다 찌그러든 깡통이 종이 위의 빨간색으로 채색한 동그란 원처럼 새어 나온 물감이 없어 보인다면 거기서 느끼는 완벽함에 대한 그리움이 해소되는 순간은 이렇게 찌거라 들지 않았더라면 원주위에 삐쳐 나와 있는 끔찍한 빨간색으로 후의 마음속에 자신의 민첩함을 의심할 만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으로 평온해지곤 한다.
“왜 그러는데?”
주위가 조용한 바람에 들려온 낮은 목소리. 오늘은 웬일로 그룹사운드 애들이 조용한 걸까? 이 건물지하에는 그룹사운드 애들이 있다. 평상시 지하에서 들려오는 보컬들의 고음은 이 건물 아래층을 울리고 있다. 그녀가 너무나 철학적인 질문을 해왔다. 여전히 그녀의 손에는 반 고호의 책이 들려져 있다. 그림이 많은 책은 반 고호에 관한 책이었다. 왜냐고? 후의 행동에 결론을 얹어 줄만한 ‘재밌겠다.’라든가 아니면 후가 느끼는 안도감에 방해가 되지 않는 침묵의 여린 눈으로 봐주던가. 결론은 곧 날테지.
“스트레스 해소.”
스트레스라는 단어는 후에게는 언제나 발음이 어렵다. 시옷이 반복되어 말을 더듬을 뻔했다.
“가봐야 돼.”
기대한 만큼의 답이 되지 못했나 보다. 후는 재빨라서 그가 느낀 실망의 눈빛은 보여주지 않았다.
“어-. 과외 있나?”
책을 가슴에 대고는 복도 끝으로 몸을 돌리고 있다.
“음. 내일 보자.” / “과외 끝나고 집에 갈 거냐?”
“그래!”
그래라는 단어는 왜 언제나 쌀쌀함이 느껴지는 걸까. 그래? 그러면 내일 볼 수 있는 건가. S.J.는 언제나 기대뿐이다.
“동물원의 널 사랑하겠어라는 노래 들어봤어요? 그 중에 어려운 얘기로 너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도 있어. 그 흔한 유희로 이 밤을 보낼 수도 있어. 라는 가사가 있잖아요.”
두 선배는 의아한 표정이다. 그 표정은 이내 닭갈비 연기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 녀석이 또 무슨 얘길 꺼내려나 하는 호기심은 이미 오래된 친구들에겐 안도감으로 다가온다.
“마음에 들지 않아요? 여자들은 하나같이 속물들이라서 그 넓은 남자의 마음을 알 수가 없어요.”
사실 후는 S.J.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비칠 만한 말을 해본 적이 없다. 그 보다는 할 줄 모른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 얘기 여자 애들 앞에서 한번 해보지 왜?”
“얘기 못하죠. 예의가 있으니까. 할 얘기가 있고 안 할 얘기가 있습니다.”
“네가 여자 얼마큼 많이 안다고 그런 소리 하냐?”
“그러는 형은 잘 돼가요? 누나 좋아하는 것도 힘들텐데요.”
“너 나한테 시비거냐. 물론 잘 돼가지. 밀월여행도 가기로 했는데 말이야.”
“그 얘기 안가는 걸로 끝났다고 그랬잖아요?”
“끝났다고는 하지 않았어.”
“아니요. 분명히 그랬어요. 얘기 끝났다고.”
“그래도 그만큼 얘기한 게 어딘데, 너는 둘이서 여행 가자고 얘기할 수 있냐?”
“당연하죠. 나도 남잔데. 허리 아래 한 뼘 정도의 거리에 묵직하게 달려있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고 통속적인...... 그러면서도...... 세련된 것이 나의 대담성을 증명해 줄 겁니다.”
후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이 녀석이 현학성을 비꼬는 잔인한 농담을 하고 있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큰형은 언제나 말이 없다.
“그래, 그래. 말할 수 있어야지.”
오랜만에 입을 연 큰형을 선배는 후배 한번 몰아보자는 자기의 생각에 같은 편이 되주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운 눈빛이다. 그런 그의 바램을 일축해 버린다.
“세련됐다잖아.”
큰형은 후의 총명함과 신선함에 항상 놀라곤 한다. 그런 놀라움을 다른 이들에게 확인시켜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래, 됐다. 그쯤하고 다른 얘기하자. 큰형의 단정적인 끝맺음은 그런 뜻도 있었다. 하지만 이 싸움은 커져 버렸다. 몇 번의 날카로운 대화가 오갔다. 이번엔 후배가 문제다. 화가 난 모양이다. 참지 못하고 나가 버린다.
“저 갈께요.”
바닥에 던져둔 가방을 집어들었나 싶더니 어느새 문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길 잃은 새끼양처럼 무서운 적(敵)도 없지. 후는 네가 알지 못하는 너의 잘못된 과거를 인식하게 만들지. 그건 괴로운 일이 될 거야. 그 녀석이 무서워지겠지.”
형은 또 뭘 알아요? 나보다 일년 먼저 제대했을 뿐이면서. 가슴속에서 울리고만 있는 소리는 입으로 나오지 않아도 들리는 듯 했다.
“뭐가 괴로운지 아세요? 괴로운 건 제 과거가 아니고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이예요.”
그러고는 가버린다. 화로를 받치는 시커먼 원통 한 귀퉁이에 덩치 좋은 한 사람이 쓸쓸하게 남았다.
“자식들 다 가버리는 구나. 저들끼리 싸우고 저들끼리 가버리는 구나.”
큰형은 이제 혼자 남았다.
“돈도 안내고.”
서서히 일어서서는. “아저씨!”하며 첫 번째 손가락으로 혓바닥 앞을 가로지르는 사선을 그린다. 주인아저씨가 ‘헤헤’하는 웃음을 보이고 있다. 다행히 욕심은 묻어 나오지 않는다.
기숙사 뒤쪽 쪽문으로 빠져나가서 한참을 걸어가면 시장이 나온다. 그 시장을 다시 긴 걸음으로 미끄러져 나가면 버스노선이 많은 큰길이 나온다. 이 큰길은 도시의 한복판에서 나와 이 앞을 가로질러서는 도시 외곽으로 시원스럽게 달린다. 후를 집에까지 데려다 줄 수 있는 버스가 도착했다. 버스에 오르는 순간, 요금함만 응시하던 그는 낯이 익은 얼굴이 바로 옆으로 스쳐 지나감을 느꼈다. S.J.가 타고 있었다. 아마 몇코스전 사회대쪽에서 탔나 보다.
“어? 집에 가나?”
말을 먼저 한건 그였다.
“아니…,” 그녀에게서 대답을 듣기 전에 그 자신은 좌석버스 뒤켠에서 같이 앉을 만한 한적한 자리에서 둘 사이에 오손도손한 대화가 오가는 모습을 상상해 냈다.
“뒤로 가자.”
좌석버스 뒤쪽에 빈자리가 많다는 건 지금 후에게 가장 큰 행운일 것이다. 후가 먼저 안쪽에 앉았고 복도를 얌전히 뒤따라 온 S.J.가 그의 왼쪽에 앉았다. 순간 그는 잘못했나. 먼저 앉게 하는 배려를 할 걸하는 생각을 했지만 다시 일어설 수는 없는 일이다. 생각해보니 S.J.의 집은 이쪽이 아니다. 대강 이쪽이지만 집에 가고 싶다면 이 버스는 타지 않을 것이다. 후는 재빨리 버스에 오르면서 했던 질문을 생각해냈다. 답은 듣지 않았는데 그녀가 얘기하지 않은 건지, 했는데 못 들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직접 물어 보기가 망설여졌다.
“아까, 집에 가냐고 물었을 때 대답했었냐.”
이상하겠지. 같은 말을 두 번 한다던가 연속으로 듣는다는 건 괴로운 일 중의 하나이니까. 하지만 S.J.는 친절했다. 그녀는 과외 가는 길이었다. 가르치고 있는 중학교 1학년 남자애가 귀엽다고도 했다. 언제나 그만이 느낄 수 있는 미소는 그의 얼굴에도 공명(共鳴)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후는 수많이 비어있는 자리들 중에서 왜 맨 앞자리에 앉아 있는지 궁금해졌다.
“왜. 제일 앞자리에 앉았는데?”
“버스 타면 난 제일 앞자리에 앉아. 많은 것이 보이거든. 버스 위에 오르는 사람들. 앞에 가는 승용차의 차 넘버. 저기 멀리 보이는 앞산의 모습도. 운전사 아저씨 바로 뒷자리도 괜찮아. 가끔 앞이 안 보이는 아저씨도 있지만.”
“과는 적성에 맞냐? 난 도무지 재미가 안 붙는 것 같아.”
“적성, 그런 거 관심 없어. NO CONCERN이야. 적어도 이 길로 들어서는데 내 제의가 많이 작용했으니 현실에 충실해지려고 열심히 하는 것 뿐이야.”
“어... 그래? 단순한 것 같지만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재미있게 사는 것에는 관심 없니? 거의 매일 그렇게 어쩌다 몇 시간이고 집중해서 그림이나 그리다가 시간 되면 수업 들어가거나 학원 가고 그러잖아. 술자리에도 좀 나오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S.J.의 표정은 읽을 만 했다.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하다니. 후는 재빨리 아까 하던 얘기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앞자리에 앉았다가 할아버지라도 타면 자리 양보해야 되잖아.”
“내가 타는 버스는 이 자리 주위에도 자리가 많으니까 문제없어. 학교에서 많이 타지 않으면 시내를 지나와도 자리가 다 차지 않아. 근데?”
후의 놀란 표정.
“어디까지 가는데?”
“여기서 내려야 돼.”
어느새 후가 내려야 할 때가 다 된 것 같았다. 이럴 땐 집이 가까운 것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세사람에 한사람이 더 있다. 큰형을 많이 따르는 유아가 있다. 술자리는 여러 이야기들로 시작된다. 한총련과 잠수함 침투사건, 노동법과 안기부법, 홍콩의 중국반환, 대기업의 연쇄부도, IMF와 깡드쉬,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등을 얘기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디카프리오와 타이태닉, 아마겟돈의 부루스 윌리스의 죽음, ‘에비타’ 의 마돈나 캐스팅, 가수들의 립싱크, S.E.S.와 핑클, 서태지 컴백 등을 얘기하긴 했다. 어떤 면에서 고독한 화가들의 삶을 동경하는 큰형은 파리의 고독한 보헤미안 모딜리아니와 그가 서른 세 살에 만난 열 아홉의 잔느에 대해 얘기하기도 했다. 모디가 죽자 잔느는 임신 9개월의 자신을 오층 창밖으로 내던졌다고 한다. 별을 좋아하는 낭만을 가진 후에게 큰형은 고호도 별을 좋아했다고 얘기해준다. 빈센트는 별빛을 동경했다. 수많은 작업을 통해 빛의 힘을 발견했던 그는 야외 카페 한 구석의 램프와 밤하늘의 별 같은 모든 종류의 빛을 작품 속에서 창조하려 했다. 예술을 향한 도전이었고 꿈의 현실화를 위한 노력이었다. ‘도시와 마을을 상징하는 지도의 검은 점들이 나를 꿈꾸게 만들 듯이 별은 나를 꿈꾸게 한다. 타라스콩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하듯이 별들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반 고호는 죽어 별을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유아는 창백한 얼굴을 가진 아이다. 그녀가 까만 T셔츠라도 입고 오는 날이면 별을 좋아하는 후는 밤하늘의 오리온을 생각한다. 추운 겨울 맑게 개인 밤하늘의 멋진 주인공은 오리온자리일 것이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인 사냥꾼 오리온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사랑했다. 여신의 오빠인 아폴로는 아르테미스를 속여 오리온을 죽이게 한다. 크고 맑은 달이 떠 있는 밤, 오리온자리를 보면서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을 생각해 보면 어디선가 아르테미스의 슬픈 울음소리가 들릴 지 모른다. 후의 귀에는 이글거리는 닭갈비들 사이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눈썹 한쪽 끝이 크게 올라갈 만한 사건이었다. 술자리에선 보기 힘든 S.J.가 왔다. 며칠 전 얘기했던 것이 조금은 효과가 있었나보다. 유아가 반가이 맞이하고 있다. 예기치 않은 뜻밖의 사건에도 후는 늘 만나는 친구를 오늘 다시 보는 듯한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과외 끝났어?”
그녀가 여기 오기까지의 과정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유아의 얼굴 앞으로 ‘안녕’하는 손바닥을 내보이더니 두 선배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어, 왔나? 오래간만이네, 어떻게 알고 왔냐?” 큰형이 먼저 답례를 했다.
“유아가 꼭 오랬어요.”
자기가 했던 말 때문이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에 조금은 언짢았다. 하지만 유아 때문에라도 애써 술자리에 나와준 그녀가 반가웠다. 선배가 뒤쪽 테이블에서 당겨다준 의자를 유아 옆으로 가까이 가져가서는 거기에 앉고 말았다.
“누구는 좋겠다.”
선배가 천장에다 대고 큰소리를 쳤다. 후는 유아 옆에 앉은 S.J.를 보았다. 이쪽 얘기에는 관심 없는 두 여학생은 허리를 뒤로 펴고 서로 볼을 가까이 대고 벌써부터 자기들의 얘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S.J.는 입을 가리기 위해 오른손바닥을 펴서 입술 앞 가까이 가져가기도 했다.
햇살은 따뜻하지만 아직은 기온이 낮은 2월의 어느 날 후는 도서관 자료실에서 남은 방학을 알차게 보냈다고 보상해 줄만한 책을 찾고 있었다. 중국문학을 둘러본 그가 긴 서가들이 정렬해 있는 좁은 복도로 나왔을 때 창가쪽 큰 책상 한 쪽 자리에 앉아있는 유아가 보였다. 큰형도 근처에 있을 거라는 그의 예상은 맞았다. 후가 유아에게 다가가려고 막 발을 뗐을 때 이미 큰형이 다가와 있었고 유아가 책을 접으며 일어서고 있었다.
“어! 웬일이고?”
형이 먼저 인사했고 유아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점심 안 먹었으면 같이 가자.” 학교 온지 한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점심시간이라니, 벌써 후의 하루 중 반나절은 지나가 버렸다. 식사중에는 의미 있는 방학 생활에 대해 얘기했다. 큰형이 TOIEC을 위해서 하고 있는 영어공부에 대해서도 얘기했고 날씨가 따뜻하다느니 학교에 사람들이 많이 나왔느니 하는 얘기도 했다. 도서관 앞 긴 화단 한 쪽에 자리잡고 앉아 늦겨울 오후의 차가운 햇살을 즐기기로 한 세사람은 오후들어 부쩍 많아진 학생들 사이의 빈자리를 찾고 있었다. 형이 가운데 앉고 후가 왼쪽에 유아가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너 정말 좋하하는 거 맞냐?” / “네?”
후는 놀랐다. 유아가 있는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다니...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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