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유아가 들었을까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행이 유아는 허리를 숙이고 가슴을 무릎에 댄 체,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려서는 오른쪽 허리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후가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그녀는 도서관 로비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응시하고 있다가 갈색 맑은 눈의 초점이 한번 맞추어지더니 도서관 안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큰형은 유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라도 발견한 건가. 후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보여 주어야 할 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다물어 버린 입술이 다시 열리진 않았다. 선뜻 결론이 나지가 않는 것이다. 아직 후를 지켜본지 일년도 되지 않았지만 서클 안에서 활달하고 술 잘먹기로 소문도 나고 선배 모시기를 깍듯이 하는 어린 후배가 자신을 계속 기만하고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큰형으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유아가 많이 귀엽죠?”

후가 간신히 낸 결론은 그의 예의바른 선배 모시기에 흡집을 내는 것이지만 큰형은 그 가벼운 결례를 허락했고 그의 말에 흔쾌히 승낙했다.

“잘돼 가요?”

뒤늦게 술집에 들어서는 후가 오른손으로는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끌어당기며 다른 한 손으로는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있다.

“누나는 단순한 사람 같애. 너무나 단순해서 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현 위치하고만 비교하고 있지. 아주 단순한 사람이야. 그런 사람 둘만 있어도 세상은 아주 복잡해지지. 너무 복잡해져서 문제도 많이 생길 거야.”

푸념은 계속되었다.

“날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그냥 잠시, 젊었을 때 바다에 다다른 강물이 언젠가 저 멀리 산기슭에서 그 곁을 휘돌아 나왔다는 햇빛에 말라버린 하얀 돌, 아니면 키작고 몸의 절반쯤은 물 속에 잠긴 연약한 물풀로 기억해 줬으면 고맙겠지. 아니야, 고마워.”
“왜 저래요?”

나무젓가락이 딱 하는 소리를 내면서 갈라졌다. 오른손 손가락사이로 왼손의 도움을 받으며 나무 저를 가지런히 한 후가 닭똥집을 한 조각 집어들었다.

“그 애가 다른 남자애를 좋아하는데 임마보다 한 살 적대잖아.”

큰형은 언제나 그렇지만 이런 걸 재밌어 한다. 손가락은 선배를 가리키고 있었고 얼굴은 활짝 웃고 있었다.

“없었던 걸로 해야지. 나이도 많은 게 참 한심한 여자야.”
“누나보단 두 살 아래네.”

후는 실연에 빠진 선배의 너절한 어구가 재미있는 모양이다.

“내가 더이상 누구를 사랑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무슨 히스테리겉지 않냐?. ‘난 아무 것도 사랑하는 것이 없어’. 여기 함 봐라. 저기 저 달력 보이지, 널 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라구. 아름답지 않냐? 저런 미소 너도 가졌을 거야.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을 수도 있지. 안 그래? 작년 가을 생각 안나? 갓 제대해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나 좀 보자고 그랬잖아.”
“몇 가지 깨달은 게 있어요. 남들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님을 다만 대충 다른 사람들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거죠.”
“아니다. 충분히 사랑하지 않은 건 네 잘못이므로 사랑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최선을 다했어야지”

우습다. 왜 사랑하는 감정 때문에 생기는 슬픔은 웃기기만 한 걸까. 후에게도 그런 것인가. 아니면 누굴 사랑하는 일 말고도 다른 할 일이 많다고 느끼는 걸까. 할 일보다는 고민일까. 충분히 사랑하지 않은 건 누구의 잘못일까.

“영업시간 끝났어요.”

아줌마의 칼을 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포장마차도 영업시간 있어요.”

후는 여기가 포장마차가 아님을 알고 있다. 자신이 순간적인 실수를 했음을 인정했다. 아쉬운 눈빛과 한심하다는 표정. 두 선배가 그런 눈으로 보고 있었다.

“아! 여긴 닭똥집이다.”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행동일 뿐이었다.

“닭똥집이 아니라 닭똥집을 파는 술집이다.”

이대로 물러 설 수 없다는 비장한 각오가 세사람의 후광에 드리웠다.

“아줌마 소주 한병 더 주세요.”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후문엔 셧터문이 많다. 불켜진 오락실 앞에 몇 사람이 어슬렁거리고 있었고 가로등이 비치지 않아 어두운 분식집 앞 한 귀퉁이에는 고개 숙이고 쪼그리고 앉아 있는 여학생과 그녀의 등을 두드리느라 중심이 이리저리 출렁이는 깡마른 남학생이 있었다. 지겨운 광경이었다. 이제는 우습다. 후의 사고가 많이 발전한 것일까. 자신은 아직 젊은 데 자꾸만 방관자가, 구경꾼이 되어 가는 것만 같았다. 자정이 넘은 거리 한가운데 있어보니 그런걸 느낀다. 셋이서 갈 데가 없다.

“그렇다고 단골들을 이 추운 겨울날 밖으로 내모나? 가자 한잔 더 해야지.”

진저리나는 퇴근길의 교통체증. 사랑하는 그녀가 탄 버스는 이제 막 병목구간을 빠져 나오고 있었다. 시원한 8차선. 상당히 많은 시간을 길에 버렸다고 느낀 운전기사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주 넓게 트인 앞유리 뒤편 그 자리에 앉아서 이르디 이른 봄비가 방울방울마다 거세게 차유리에 부딪쳐서는 순간적으로 그녀 앞의 현란한 세상을 다 담고 맑게 투영하는 볼록렌즈가 되었다가 흩어지는 장면을 가능한 한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으리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 순간은 짧아지고 있었다. 이제는 눈앞은 어지러운 세상을 그 조그만 원안에 담지 못하고 강력한 힘으로 유리창 한켠으로 길게 몸을 늘어뜨리며 지나가고 있었다. 버스가 달려나가는 앞으로 안 막히는 길도 있잖아하면서 보아란듯이 빨간 불빛을 등진 승용차들이 땅에 쓰러져 조금 쉴 틈도 주지 않는다는 빗물을 날새게 걷어 내고 있었다. 저 차들이 돌아가고 있다. 조금씩 굽어져 돌아가고 있었다. 충분한 추진력을 얻은 이 버스는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길은 여기서 30도 정도 왼쪽으로 비틀려져 나간다. 플라타너스 가로수 하나가 쓰러졌고 버스는 멈췄다. 이제는 하얀 색으로 치장한 선명한 렌즈들이 도시 한쪽의 화려한 형광등들을 천천히 담아 내고는 아래로 쓰러지고 있다.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녀는 이세상에 돌아오지 못했다.

밤 10시. 유아가 화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약간의 이국적 이미지를 가진 그녀의 얼굴이 까만 T셔츠에 묻혀 많이 창백해 보이는 얼굴이다.

“혼자 그림 그리네?”

밤 10시 반. 집에 갈 시간이다. 하지만, 유아는 그림에 몰두해있다.

밤 11시. “맥주 마실래? 캔 맥주 사올게.”

“응!”. “문 꼭 닫고 있어. 금방 갖다 올게. 아니지 같이 가자.”

“여기서는 별이 보이지 않아.”

얼마전 일층으로 이사한 화실에는 한 발짝쯤 밖으로 나가서는 약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는 발코니가 있지 않았다.

밤늦은 시간 먹는 기름에 비해서 별로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는 녹슨 난로에 감사하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낭만을 즐기려면 손때에 잔뜩 긁힌 광택 없는 회색 가스라이터를 들고 나가서는 필터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허리쯤 되는 부분이 지탱할 힘이 없는 것처럼 약간 처진 그래서 구부러져 보이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상쾌하구나 밤공기가 맑아하면서 쳐다볼 수 있는 하늘, 별, 그림자뿐인 전나무가 눈앞 가득한 발코니가 필요할 것이다. 그래도 몸에 이로운 것이라곤 하나 없는 담배는 끊는 것이 좋겠지.

“별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아냐?”

어려운 얘기가 막 시작되려나 보다. 하지만 유아는 별다른 호응이 없다. 호기심에 가득한 표정도 아니고 지금 이 강의를 듣지 않으면 내 점수는 받지 못한다는 식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얘기가 들려오면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후의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시점을 택하고 말았다. 그리 오랜 시간 고민한 것은 아니어서 대답 또한 길지 않았다.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감명 깊게 읽은 사람.“

후는 놀랐다. 맞는 얘기인 것 같았다. 가끔씩 깔끔한 말로 자신을 놀래주는 친구들이 주위에 있음이 새삼 자신은 운이 좋구나하는 생각을 해보게 했다. 그가 어느 별을 좋아하는 지 얘기할 차례가 된 것을 알았다. 후는 샛별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먼저 시작한 쪽은 유아였다.

“천문대기학과도 아니면서 별을 좋아한단 말이야?”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이 왜라는 물음에 대답하게 될까. 그건 일종의 기술이다. 무지한 대학생의 방황, 자신의 모자람을 인내심 있고 끈기 있게 바라보지 못하고 소외된 채 살아가는 연약한 대학생들을 향한 끓어오르는 질책에 관한 젊음, 피고인 상처에 생겨나는 고름처럼 끊임없이 공격당하는 폭주에 대한 동경의 힘 따위를 설명할 기술을 가진 이가 얼마나 될까. 그 아이의 기술은 그 정도였다. 금성은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프로디테, 로마신화에서는 비너스의 이름을 하사 받았다. 태양계의 미인 금성은 단 한 명의 아들도 거느리지 않은 외로운 행성이다. 초저녁과 새벽에 잠깐 동안 선을 보이다 사라지고 마는 금성은 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그리움만 남긴다. 비너스는 이들의 가슴에 뜨거운 사랑의 열병을 씨뿌린다.

“집에 안 갈 거냐?”
“가야지. 좀 바래다 줘.”
“화구정리는 내가 해줄게.”
“고마워, 붓은 깨끗하게 씻어야 돼.”

유아는 추울 텐데 너무 오래 있지 말고 집에 들어가라고 따뜻한 조언도 해주었다. 정문으로 나가서 택시를 잡아 주었다. 회색의 중형택시였다. 화실로 돌아오면서 후는 자신이 태워준 그 택시 넘버를 되내이고 있음을 알았다. 이딴 건 기억해서 어쩐담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도시이름, 상단의 숫자두개, 어려운 발음의 한 글자, 그리고 자신에게 그다지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네숫자는 이미 후의 머릿속에 깊이 박혀버렸다.

이제 그림을 그려야 되겠지. 일단 이젤을 적당한 각도로 눕힌 다음 합판의 높이를 조절한다. 후는 의자 끝에 걸터앉아 등을 앞으로 잔뜩 웅크리고 합판 너머에서는 보이지 않는 높이를 좋아한다. 그러고는 갖은 색상이 점으로 박혀 있기도 하고 테두리에서 흘러내리다 멈추어 서서 더 내려가기 싫은 몸짓을 하고 있는 별로 수채화의 한 도구로 이용되지 않을 것 같은 물통에 물을 채웠다. 지난여름 바닷가에 인접한 도시에 가서 그 도시 주변의 작은 산에서 찍은 사진을 꺼내서 합판 왼쪽 상단에 압핀으로 꽂아 둔다. 후는 갑자기 그 사진 속에 찍힌 거기에 있던 한적한 절의 이름을 생각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생각나는 것은 그 산 입구에 이르는 기다란 아스팔트 도로뿐이다. 소나무 하나가 생각이 나고 계곡을 가르는 콘크리트다리가 있었다. 그날 밤 먹었던 큼직한 수박도 생각났다. 2시다. 더 이상 기억을 파헤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후는 이럴 때 불안해지고 만다. 내 머리 속에서의 민첩성은 없는 것인가. NO CONCERN. 그래 그거다. 이 불안은 지금 후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늘 그림에 사용할 종이는 일제 켄트지이다. 값이 많이 올라서 이젠 수채화도 값싼 작업이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면 다른 종이는. 좀 더 값싼 종이 말이야. 얼마든지 있는데. 대게 잘 그리는 사람들은 이 종이를 쓴다. 후가 다른 종이를 쓴다면 그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불안감이다. 후는 스케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선배들은 항상 밑그림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스케치를 하고 나면 이미 그림은 실증이 나버린다. 연필을 잡고 먼 산의 위치를 표시하고 가까운 숲은 큰 원으로 표현했다. 그러고는 팔레트를 열고 물감을 개기 시작했다. 프러시안 블루로 하늘을 그린다. 적당히 종이의 여백을 그대로 두어 흰 구름을 표현하기도 했다. 로우 엄버를 썪어 물을 잔뜩 먹은 구름도 표현했다. 숲을 그리기 위한 적당한 색을 찾으려 샢그린을 짜는 순간, 큰일이다. 이미 그림에 실증이 나버렸다. 실증이 난다는 건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가장 무서운 적(敵)이다. 게다가 잠이 오고 있다. 오늘밤 난로는 왜이리 따뜻한 걸까.

후는 자신의 마음을 바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차갑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다. 바람을 가려줄 만한 벽을 쌓는다는 건 오히려 더 차가워지는 것이 아닐까.

아침 6시. 유아가 없었다. 그녀가 그리던 그림도 없었다. 어디로 간 걸까. 어젯밤에 집에 갔구나. 유아가 그리던 유화는 화실 한 쪽에 반듯이 놓여 있었고 붓과 물감이 들어있는 화구상자는 정리가 안된 채 열려있었다. 붓을 씻지 않았으니 유아에게 미안했다. 아랫배가 살살 아파 온다. 탈이 났나 보다. 어지럽게 널려있는 화구들 사이로 간밤에 느꼈던 싸늘함이 베어 나오고 있었다. 밤새 누워있던 긴의자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킨 후는 어깨를 감싸쥐고 잔뜩 웅크려 보았다. 몸이 너무 차가웠다. 난로가 이미 꺼진 지 오래였다. 시계를 보고 달력을 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허무감이라는 권력이 후를 끈질기게 비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 10시. 유아가 울먹이면서 화실로 들어 왔다. 후를 보고는 눈물이 더욱 고이는 것 같았다.

“왜? 무슨 안 좋은 일 있었냐?.”
“S.J.가 죽었데.”
“......죽다니?”
“어제 밤에 버스사고가 났었데.”
“죽다니......”

말문이 막혔다.

그가 사랑하는 S.J. 그녀는 그렇게 세상과 작별했다. 별들을 바라보면 꿈이 생기고 죽어 별에 여행하고 싶다던 반 고호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잠이 든 지 한참이 지났는데 가늘게 비치는 달빛으로 어두운 방안 가구들의 윤곽은 뚜렷했다. 빛이 많이 뭉쳐있을 만한 부분에 유난히 거먼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두루마기 같았다. 저승사자! 까만 두루마기 그건 저승사자임을 말해 주었다. 그는 그 사람을 반가워했다. 그게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반드시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져댔다.

저승사자님. S.J.는 제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죽었습니까?
저승사자님. S.J.는 제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죽었습니까?
.
.
.
.
S.J.는 제가 ......

아무말하지 않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아서고 있었다. 시커먼 옷깃사이로 땅의 끝도 하늘의 끝도 없는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일고 있었다.

“그녀는 알고 있다네.”

그녀의 하얀 숨결이 산 능선을 따라 흩어졌다. 유아가 많이 울었다. 후는 그저 산 저쪽으로 날아가는 따뜻함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바람에 멀리 비상하는 S.J.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이 따뜻하겠지. 바람의 마음을 알 테니까. 산을 내려올 땐 주위가 온통 빨간 하늘빛으로 가득 찼다. 해는 이미 보이지 않았지만 유난히 빛나는 별 하나가 홀로 떠 있었다.

“그래 저승사자가 마지막으로 가면서 뭐라 그러더냐?”

선배가 물었다.

“너의 일생을 충만한 단편과 너의 몸에서 생겨난 그 선명한 혈액이 미쳐버리도록, 아무 손쓸 겨를 없이 빠져나가는 고통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가슴아픈 잃음은 너 자신을 숭고하고 아름다운 색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알아듣겠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정중간에 있던 목이 한쪽방향으로 빠져나가면서.

“그거야? 뭐 그리 어려워? 그걸 다 외웠냐?”

흥분한다. 정중간에 있던 큰형의 목이 뒤쪽으로 빠져나간다.

“저승사자래잖아.”

큰형은 언제나 간단하게 흥분한 상대방이 이해하기 좋도록 얘기해 주었다. 우습다. 아니야.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저승사자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모르겠어요. 그냥 외워지더라구요.”

그 말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슨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 그건 NO CONCERN이다. 단지 검은 두루마기의 신사가 입술을 어떻게 움직여 나가는 가를 보았고 그는 그 입술 그대로 여기서 움직여 나갔다. 단지 슬픈 일을 겪었을 뿐이다.

“어! 왔다.”

A.H.형이 도착했다. A.H.형은 온화한 미소를 지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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